컴퓨터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하거나 큰 파일을 처리할 때 자주 언급되는 부품이 RAM이다. 일반적인 PC에서 사용하는 주기억장치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이 자리해 왔다.
DRAM은 프로세서가 작업 중인 데이터를 잠시 저장해 두는 메모리다. 저장장치인 SSD나 HDD와 달리 전원이 꺼지면 내용이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지만, 빠르게 읽고 쓸 수 있어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작업을 처리하는 데 적합하다.
오늘날에는 작은 메모리 모듈 안에 매우 큰 용량을 담을 수 있지만, 초기 컴퓨터의 메모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DRAM이 등장하기 전에는 어떤 기술이 사용됐고, DRAM은 왜 컴퓨터의 대표적인 메모리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DRAM 이전에는 자기 코어 메모리를 사용했다
1950~1960년대의 많은 컴퓨터에서는 자기 코어 메모리(Magnetic Core Memory)가 널리 사용됐다.
자기 코어 메모리는 작은 고리 모양의 자성체를 격자 형태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전선을 통과시켜 자기 상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했다. 각 코어는 자기 방향에 따라 0과 1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당시 기준으로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전원이 꺼진 뒤에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많은 코어와 배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크기와 제조 복잡성이 증가했다.
또한 집적회로처럼 실리콘 칩 내부에 대량으로 소자를 집어넣는 방식과는 구조가 달랐다.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작고 집적도가 높은 메모리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반도체 기반 메모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버트 데나드와 1T1C 구조의 등장
DRAM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IBM 연구원이었던 로버트 데나드(Robert Dennard)다.
1960년대 후반 데나드는 하나의 메모리 셀을 트랜지스터 1개와 커패시터 1개, 이른바 1T1C 구조로 구성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커패시터는 전하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고, 트랜지스터는 해당 셀에 접근할 때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커패시터에 저장된 전하 상태를 이용해 0과 1을 구분한다.
이 구조의 장점은 메모리 셀을 비교적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셀 하나의 구조가 단순할수록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비트를 집적하기 유리하다.
이러한 특성은 DRAM이 대용량 메모리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DRAM의 ‘Dynamic’은 왜 붙었을까
DRAM의 이름에서 D는 Dynamic, 즉 ‘동적’이라는 의미다.
그 이유는 저장된 전하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커패시터는 전하를 완벽하게 영구 보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저장된 상태를 정확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DRAM은 일정한 주기로 저장 상태를 다시 읽고 전하를 보충하는 리프레시(Refresh) 과정이 필요하다.
이 점이 DRAM의 중요한 특징이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동안 메모리 제어회로는 저장된 데이터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리프레시 작업을 수행한다. 전원이 꺼지면 이러한 과정도 중단되고 저장된 데이터는 사라진다.
그래서 DRAM은 휘발성 메모리에 속한다.
반면 SSD나 플래시 메모리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유지할 수 있어 비휘발성 메모리로 분류된다.
DRAM은 왜 SRAM보다 대용량에 유리할까
컴퓨터에는 DRAM 외에도 SRAM(Static Random Access Memory)이라는 메모리가 사용된다.
SRAM은 일반적으로 DRAM보다 빠르고 리프레시가 필요하지 않다. 대신 하나의 비트를 저장하기 위해 더 많은 트랜지스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셀 면적이 커지고 비용도 높아지는 편이다.
이 때문에 SRAM은 주로 CPU 내부의 캐시 메모리처럼 매우 빠른 접근 속도가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
반면 DRAM은 1T1C 구조 덕분에 셀을 더 작게 만들 수 있어 대용량 메모리를 구성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일반적인 컴퓨터 시스템에서는 역할이 나뉜다.
CPU 가까이에는 빠른 SRAM 캐시가 배치되고, 더 큰 용량의 작업 공간은 DRAM이 담당한다.
이처럼 DRAM은 가장 빠른 메모리는 아니지만, 속도와 용량, 비용 사이의 균형이 좋아 주기억장치로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
인텔 1103과 DRAM의 상용화
DRAM 기술이 실제 컴퓨터 산업에 확산되는 데 중요한 제품 가운데 하나가 Intel 1103이었다.
인텔은 1970년 1103 DRAM을 출시했고, 이 제품은 초기 상용 DRAM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Intel 1103은 흔히 “1K DRAM”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1,024비트(bit)를 저장한다는 뜻이다. 1,024바이트를 의미하는 1KB와는 다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매우 작은 용량이지만, 당시에는 반도체 메모리가 자기 코어 메모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제품이었다.
DRAM은 집적회로 제조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비트를 하나의 칩에 넣을 수 있었고, 생산량이 늘면서 컴퓨터의 주기억장치로 빠르게 확산됐다.
DRAM은 어떻게 더 큰 용량으로 발전했을까
DRAM의 발전은 단순히 칩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메모리 셀을 넣기 위해 제조공정이 미세해졌고, 커패시터 구조 역시 계속 변화했다.
메모리 셀의 크기가 작아지면 커패시터가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도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한 전하를 저장할 수 있도록 입체적인 구조를 활용하거나 새로운 재료를 적용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이러한 기술의 축적을 통해 DRAM은 수십 킬로비트, 메가비트, 기가비트 단위로 용량을 늘려왔다.
동시에 데이터 전송 속도도 높아졌다.
PC에 사용되는 DDR 계열 메모리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더 높은 전송 속도와 전력 효율을 목표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AI 연산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데이터를 이동해야 하는 환경에서 HBM(High Bandwidth Memory)과 같은 고대역폭 메모리도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DRAM이 중요한 이유
프로세서 성능이 높아질수록 메모리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CPU나 GPU가 매우 빠르게 계산하더라도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를 흔히 메모리 병목 문제와 연결해 설명한다.
DRAM은 프로세서가 바로 사용할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면서 저장장치보다 훨씬 빠른 접근 속도를 제공한다.
그래서 현대 컴퓨터는 대체로 저장장치, DRAM, 캐시 메모리를 계층적으로 구성한다.
저장장치는 큰 용량을 담당하고, DRAM은 실행 중인 데이터의 작업 공간을 제공하며, SRAM 기반 캐시는 프로세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매우 빠른 접근을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각 메모리 기술은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높인다.
DRAM이 반도체 산업에서 갖는 의미
DRAM은 단순히 컴퓨터 부품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오랜 기간 반도체 시장의 큰 축을 형성해 왔고, DRAM은 그 중심에 있었다.
제조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셀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높은 수율을 확보하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제조 경험은 메모리 기업의 경쟁력과 직접 연결된다.
또한 PC와 서버,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 새로운 시장이 성장할 때마다 더 많은 메모리 용량과 높은 대역폭이 요구됐다.
따라서 DRAM의 발전 과정은 컴퓨터의 기억장치 역사이면서 동시에 반도체 미세공정과 대량생산 기술의 발전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핵심 요약
- 자기 코어 메모리에서 반도체 메모리로: 초기 컴퓨터는 자기 코어 메모리를 사용했지만, 집적도와 제조 측면에서 반도체 메모리가 점차 유리해졌다.
- 1T1C 구조: DRAM은 트랜지스터 1개와 커패시터 1개를 기본 셀로 사용해 높은 집적도를 구현하기에 적합하다.
- 리프레시 필요: 커패시터의 전하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 SRAM과의 역할 분담: SRAM은 빠르지만 비싸고 셀 면적이 큰 반면, DRAM은 대용량 주기억장치에 적합하다.
- 계속되는 발전: 미세공정과 셀 구조 개선을 통해 DRAM은 더 큰 용량과 높은 전송속도로 발전해 왔다.
FAQ
DRAM과 RAM은 같은 뜻인가?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RAM은 임의 접근 메모리라는 넓은 개념이고, DRAM은 그중 하나의 방식이다. 일반적인 PC에서 ‘RAM’이라고 부르는 메모리 모듈에는 주로 DRAM이 사용된다.
DRAM은 왜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질까?
데이터를 커패시터의 전하 상태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전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리프레시를 할 수 없고 저장된 전하도 유지되지 않아 데이터가 사라진다.
DRAM과 SSD는 어떤 차이가 있나?
DRAM은 빠른 작업용 임시 메모리이고, SSD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보존하는 저장장치다. 두 부품은 속도와 용도, 데이터 유지 방식이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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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여러 연산 기능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Intel 4004의 등장을 살펴보고, 이 기술이 컴퓨터의 소형화와 대중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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