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능을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하나의 칩 안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제조사는 오랜 기간 회로 패턴을 더 작고 정밀하게 만드는 미세공정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제조 난도는 빠르게 높아진다. 특히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 공정에서는 사용되는 빛의 파장과 광학계의 성능, 마스크 설계, 공정 보정 기술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 가운데 하나가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노광이다. EUV는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ArF 노광보다 훨씬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 더 미세한 패턴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
그렇다면 기존 노광 기술은 왜 한계에 가까워졌고, EUV는 어떤 방식으로 미세공정을 돕는 것일까.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노광 공정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노광은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옮기는 핵심 공정 가운데 하나다.
먼저 웨이퍼 표면에 빛에 반응하는 감광 물질인 포토레지스트를 바른다. 이후 회로 패턴이 담긴 마스크를 이용해 빛을 조사하면 특정 부분의 화학적 성질이 변한다. 이후 현상과 식각 등의 공정을 거치면서 원하는 회로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실제 반도체 노광은 훨씬 복잡하다. 회로의 크기가 수십 나노미터 이하로 작아지면 빛의 회절과 공정 오차, 마스크의 정밀도 등이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노광 기술에서는 빛의 파장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렌즈의 성능을 높이고, 마스크 패턴을 보정하며, 여러 번 나누어 노광하는 방식 등이 함께 사용되어 왔다.
193nm ArF 노광은 어떻게 한계를 넓혀왔을까
EUV 이전의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는 193nm 파장의 ArF 엑시머 레이저가 오랫동안 사용됐다.
처음에는 193nm보다 훨씬 작은 회로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 보였지만, 반도체 업계는 여러 기술을 결합해 해상도를 계속 높였다.
대표적인 방법이 액침 노광이다.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굴절률이 높은 액체를 넣어 광학적 성능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한 하나의 패턴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만드는 멀티 패터닝 기술도 활용됐다. 한 번의 노광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미세한 구조를 여러 차례 공정으로 나누어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193nm의 빛을 사용하면서도 훨씬 작은 반도체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단계가 늘어나고 마스크 수가 증가하며 각 단계 사이의 정렬 오차를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제조시간과 비용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노광 기술이 필요해졌다.
EUV는 무엇이 다른가
EUV는 약 13.5nm 파장의 극자외선을 사용하는 노광 기술이다.
193nm ArF보다 훨씬 짧은 파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 작은 패턴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 특히 일부 첨단 공정에서는 기존 방식에서 여러 차례 필요했던 패터닝 단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EUV가 모든 공정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서는 EUV를 사용하더라도 제품과 공정에 따라 여러 차례의 노광이나 추가적인 패터닝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실제 해상도는 파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광학계의 수치개구수, 마스크 설계, 포토레지스트의 특성, 공정 제어와 같은 여러 요소가 함께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EUV의 핵심은 ‘짧은 파장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기존 노광 기술에서 점점 복잡해지던 미세 패턴 형성의 부담을 줄이고 더 높은 집적도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EUV 장비가 복잡한 이유
EUV는 기존의 가시광선이나 ArF 레이저와 다르게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13.5nm 파장의 빛은 공기와 일반 유리 같은 물질에 쉽게 흡수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렌즈를 통해 빛을 전달하는 방식이 어렵다.
이 때문에 EUV 노광 장비 내부는 진공에 가까운 환경을 유지하고, 빛을 통과시키는 렌즈 대신 특수한 반사 거울을 사용한다.
이 거울은 여러 층의 물질을 정밀하게 쌓아 특정 파장의 EUV를 반사하도록 만들어진다. 빛이 광원에서 웨이퍼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반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각 부품의 정밀도가 매우 중요하다.
광원을 만드는 방식도 복잡하다. EUV 장비에서는 작은 주석 방울에 강한 레이저를 조사해 플라즈마를 만들고, 여기서 발생하는 극자외선을 노광에 이용한다.
이처럼 광원과 진공 시스템, 거울, 마스크, 제어장치가 모두 높은 수준의 정밀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EUV 노광 장비는 현대 반도체 제조장비 가운데 가장 복잡한 시스템 중 하나로 꼽힌다.
ASML은 어떤 역할을 하나
현재 첨단 EUV 노광 시스템을 상용 공급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네덜란드의 ASML이다.
하지만 EUV 장비가 한 회사의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광원, 광학계, 레이저 시스템, 정밀 제어장치 등 여러 분야의 전문 기업이 공급망에 참여한다.
ASML은 이러한 핵심 부품과 기술을 하나의 노광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EUV 장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첨단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비를 실제 생산라인에 적용한 뒤 공정 조건을 최적화하고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제조 경험이 필요하다.
결국 첨단 공정 경쟁력은 노광 장비의 보유 여부뿐 아니라 공정 설계와 운영 경험, 소재, 마스크, 수율 관리 등이 함께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EUV 이후에도 미세공정의 과제는 남아 있다
EUV의 도입으로 미세공정의 가능성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반도체 미세화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회로가 더욱 작아질수록 트랜지스터 구조 자체도 변화해야 한다. 전류 누설을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기존 평면 구조에서 FinFET, GAA와 같은 새로운 트랜지스터 구조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첨단 공정의 비용이 높아지면서 모든 기능을 가장 미세한 공정으로 제작하는 것이 항상 경제적인 선택은 아니다.
이 때문에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는 미세공정과 함께 칩렛, 첨단 패키징, 3차원 적층 같은 기술도 중요해지고 있다.
즉, 미래의 반도체 성능 향상은 회로를 더 작게 만드는 기술 하나에만 의존하기보다 여러 제조 기술과 설계 방식을 함께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핵심 요약
- 노광 공정: 빛과 마스크를 이용해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단계다.
- ArF의 발전과 한계: 193nm ArF 노광은 액침과 멀티 패터닝 등의 기술을 통해 오랫동안 미세공정에 활용됐지만, 공정 복잡성과 비용이 증가했다.
- EUV의 특징: 약 13.5nm의 짧은 파장을 사용해 더 미세한 패턴 형성에 유리하며 일부 공정의 패터닝 단계를 줄일 수 있다.
- 복잡한 장비 구조: EUV는 공기와 일반 렌즈에 쉽게 흡수되기 때문에 진공 환경과 특수 반사 거울이 필요하다.
- 장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쟁력: 실제 첨단 공정 성능은 노광 장비뿐 아니라 수율, 소재, 마스크, 공정 제어와 제조 경험이 함께 결정한다.
FAQ
EUV는 기존 ArF 노광을 완전히 대체했나?
아니다. 반도체 제조에는 다양한 크기의 회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층에 EUV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정의 목적과 비용에 따라 ArF를 비롯한 기존 노광 방식도 함께 사용될 수 있다.
EUV를 사용하면 멀티 패터닝이 필요 없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EUV는 일부 공정에서 패터닝 횟수를 줄일 수 있지만, 매우 복잡하거나 미세한 패턴에서는 EUV를 사용하면서도 여러 단계의 패터닝이 활용될 수 있다.
EUV 장비를 보유하면 첨단 공정을 바로 생산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장비 외에도 마스크, 포토레지스트, 공정 조건, 수율 관리와 같은 기술이 필요하다. 장비를 안정적으로 생산라인에 적용하는 제조 경험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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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반도체 기업이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IDM·팹리스·파운드리로 역할이 나뉘게 된 배경과 이러한 분업 구조가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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